‘살아있는 방파제 프로젝트’ 개념도 ⓒhttps://www.scapestudio.com, https://www.rebuildbydesign.org
리질리언스 사고에서 해답을 찾다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이스터 섬의 모아이 석상은 3.5m의 거대한 크기와 20톤의 엄청난 무게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다양한 분야의 학자들이 석상에 숨어있는 기이한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몰려들었다. AD 800년경 이스터 섬에 정착한 원주민은 비옥한 토양, 다양한 포유류와 조류가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 야자나무로 이루어진 넓은 숲을 파괴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숲을 태워 화전 농업을 하고 야자나무를 베어 카누를 제작했다. 부와 권력의 상징인 넓은 정원과 석상을 만들었다. 15세기에 이르자 이스터 섬의 모든 생물체가 멸종했고, 살아남은 인간은 생존을 위해 식육을 자행할 수밖에 없는 저주받은 섬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이스터 섬 같은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보르네오 섬은 야자나무의 한 종류인 팜나무가 풍부한 지역이다. 탄소배출권거래제와 산림탄소상쇄제도의 시행으로 바이오디젤의 원료인 팜나무의 열매가 각광받고 있다. 또한 화석 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팜유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추세다. 말레이시아 정부와 플랜테이션 기업은 늘어난 팜유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이탄 습지림1을 불태워 팜나무 농장을 조성 중이며, 열매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다량의 비료와 살충제를 사용하고 있다. 이같은 과도한 팜나무 플랜테이션은 주변 생태계와 지역 사회를 붕괴시킬 뿐만 아니라, 팜유 1톤을 생산하기 위해 석유 1톤을 사용할 때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양의 10배를 배출하는 모순적인 상황까지 연출하고 있다.
두 사례의 가장 두드러진 공통점은 생태적 문제가 모두 그 지역의 사회 경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자연은 인간이 없는 아름다운 미지의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연은 인간과 공존하며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하나의 사회생태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생태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을 관계자actor라 한다. 이스터 섬의 경우 원주민, 보르네오 섬의 경우 말레이시아 정부, 플랜테이션 기업 그리고 지역 주민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은 단선적 안목으로 자연 자원을 착취하여 생산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으나, 그들이 속한 사회생태시스템의 특성인 문턱threshold, 체제regime, 적응 주기adaptive cycle를 알지 못했다. 사회생태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관계자의 자연 자원 관리는 이스터 섬의 열대 우림을 초지와 모래밭으로, 보르네오 섬의 이탄 습지림을 팜나무 농장으로 변하게 하는 체제 변환regime shift을 야기했다. 특히 보르네오 섬의 경우 지역 스케일의 생태적 문제인 이산화탄소 대량 발생과 더 큰 스케일의 생태적 문제인 기후 변화가 파나키panarchy라는 개념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생태적 문제의 다변화 및 대형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그렇다면 두 시스템의 관계자는 어떻게 사회생태시스템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을까? 사고에서 해답을 찾고자 한다.
리질리언스 사고의 틀, 사회생태시스템
리질리언스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사회생태시스템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사회생태시스템이란 사회 시스템과 생태 시스템으로 구성된 하나의 통합 시스템을 말한다. 이는 경제학자와 사회학자 그리고 과학자가 문제를 세분화하여 각자의 대안을 찾는 환원주의와 정반대의 개념이다. 사회생태시스템은 문제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모여 전체 시스템의 해결책을 도출하는 전일주의 개념이다. 다양한 문제를 사회생태시스템에 대입하여 이해하면 그 문제들의 특별한 의미와 새로운 대안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사회에 큰 메시지를 던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사회생태시스템의 구성 요소인 사회 시스템과 생태 시스템은 다양한 스케일로 구분된다. 생태 시스템은 생태계 서비스를 사회 시스템에게 제공한다. 반면 사회 시스템은 생태 시스템의 자원을 이용하거나 토지 이용을 변경시키지만, 동시에 생태 시스템을 보전하기도 한다. 두 시스템의 연결 고리가 얼마나 긴밀한지, 연결 고리를 통해 자원들이 얼마나 원활하게 순환하는지에 따라 외부 교란에 대한 사회생태시스템의 리질리언스가 결정된다.
사회생태시스템은 스케일-도메인 매트릭스로 표현할 수 있다. 스케일은 ‘소규모-중규모-대규모’로 구성된다. ‘주요 스케일’을 중규모로 설정하여 사회생태시스템의 경계가 규정된다. 도메인은 ‘사회적-경제적-생태적’으로 구성되며, 각 도메인은 스케일을 넘나들며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인간은 대규모 스케일의 변화와 각 도메인의 연결 고리를 감지하기 어려운 동물이기에 장기간의 안목이 필요한 정책이나 대안을 세우기 어렵다. 따라서 사회생태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리질리언스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개념이 필요하며, 이 개념들이 머릿속에서 구체화되어야 한다.
첫째, 인간은 사회생태시스템 속에 존재한다. 과거의 이스터 섬이든, 현재의 보르네오 섬 혹은 서울 한복판이든 간에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가는 곳의 생태 시스템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사회 시스템 혹은 생태 시스템이 변한다면 다른 시스템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일부 시스템을 따로 떼어놓고 해석한다면 사회생태시스템의 전체적인 행태와 구조를 제대로 해석할 수 없다.
둘째, 사회생태시스템은 복잡계다. 사회 시스템과 생태 시스템을 잇는 연결 고리는 매우 복잡해서 어떤 교란이 일어났을 때, 전체 시스템이 언제 어떻게 반응할지 예측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또한 최적의 평형 상태는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개 이상 존재한다. 따라서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은 억측에 불과하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로렌츠Edward Norton Lorenz의 주장은 이와 일맥상통한다. 기상학뿐만 아니라 경제학, 생태학 등 모든 분야에서 불확실성을 복잡계를 이해하기 위한 핵심 개념으로 활용하고 있다.
셋째, 사회생태시스템의 속성인 리질리언스는 지속가능성의 핵심 개념이다. 리질리언스란 변화를 흡수할 수 있는 시스템의 능력이다. 리질리언스가 높은 사회생태시스템은 외부 교란과 직면했을 때 바람직하지 않은 시스템으로 변환되지 않는다. 그 이유는 교란을 회피할 수 있는 사회생태시스템의 능력과 재화 및 서비스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단기적으로 보았을 때 리질리언스가 꼭 사회생태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필수 조건은 아니다. 하지만 태풍, 쓰나미, 부동산침체 등과 같은 위기를 잘 관리해 인간 사회를 장기적으로 유지하려면 리질리언스가 필요하다